기괴함에 관하여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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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14:52
눅1: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눅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여기서 누가의 중심을 본다,
첫째, 자세히 살폈다,
둘째, 차근차근 애기 가르치듯 했다,
셋째, 배운 것에 경험과 승리를 줬다,
당신은 자신의 혀를 자세히 살피는가?
당신은 자신의 혀를 애기 가르치듯 차근차근 공부시키는가?
당신은 자기 혀가 뱀에게 걸려들지 않게 철저히 싸우는가?
그것이 바로 배운 바의 확실함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배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배움 끝에도 확실함이 없다는 바로 그것이다,
배웠음에도 수도 없이 미끌어지고,
배웠음에도 수도 없이 무너지는 것, 바로 그것이다,
확실함은 미끄러지지도 않고, 걸려 넘어지지도 않는다 함이다,
그 놈의 혀가 자기 존심에 대책없이 미끄러지고,
그 년의 혀가 자기 고집에 대책없어 걸려 넘어진다,
자기 혀, 자기 생각에 확실함이 없는 영혼들의 비극적인 정체다,
자기 혀가 미끄러지는 순간에도, 저들은 그것조차 알지를 못한다,
자기 혀가 걸려 넘어지는 순간에도, 저들은 그것조차 알지를 못한다,
어찌하랴, 이를 어찌하랴, 어찌 더 지켜보랴,
확실함이 없는 인간들 세치 혀(=생각)를,
참으로 기괴하다,
자기 혓바닥에 자기가 말을 담고서도,
그것이 미고사축인지 씨부렁인지, 그것조차 구분을 못한다,
목사들 혓바닥이 참으로 기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