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
[삿9: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감람나무는, 자기는 죽어도. 사람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알았다,
무화과나무는, 자기는 죽어도, 모든 인생들과 아름다운 실과 나눔을 자기 최고의 행복으로 알았다,
포도나무는, 자기는 죽어도, 사람을 기쁘게하는 새술을 자기 최고의 행복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영광과 자랑을 다 우습게 여기고 그것을 좇아 요동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저기 가시나무 '아비멜렉'이 있었다, 그가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일 뿐이었다, 내가 널 지켜주마, 내가 널 보호해주마,
무엇으로? 찌르는 가시로?, 가시나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통과 찌름> 외엔 분명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자기를 건드리면 고통을 주겠다나? 건드린 만큼 찌름을 되돌려 주겠다나?
바로 이것이 아비멜렉이다, 자기 취향, 자기 욕구, 자기 방어와 자기 보호,
그것이 이념이든, 체제이든, 종교이든, 국가이든, 재물이든, 심지어 예술이든,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겐 자기 방어와 보호를 위한 <가시>일 뿐이다, <찌름과 고통>을 낳을 뿐이다,
그것이 가시나무의 영성, 즉 자기 보호와 자기 성공이라는 <가시>이다,
자기 영혼이 자기 것인가?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가?
심지어는 자기 육체라도 자기 것인가?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자기 세월과 날수가 자기 것인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시는가?
모든 <파괴와 멸망>의 가시나무들은, 그렇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오늘도 그렇게 살 수 밖엔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인생 각자의 <자기 정체>일 뿐이다,
사람, 즉 자기 인생의 정체는, 그렇게 자기 스스로에 의해, 날마다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 사망, 천국과 지옥은, 지금 이 순간도 자기 스스로에 의해, 가감도 숨김도 없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을 영접론, 은사론, 직분론으로, 아무리 그럴 듯하게 변명하고 포장해봤자, 그렇게 허탄하게 폭로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