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절대원칙
[요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 청소년 사역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계속 되어온 '설교의 원칙'이 있었다,
그 설교의 원칙은, 의도적으로 세운 것은 결코 아니였었다,
그것은 다만 '묵상과 적용' 생활의 자연스런 결과였을 뿐이었다,
영적인 고민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 앞에 꺼내놓고 그것을 싸웠고,
그 싸움 중에 아버지는 늘 빛을 주셨고,
그 경험과 음성이 늘 내 설교의 초석이 되었고, 희안하게도 그것이 그때 그때 모두에게 늘 은혜가 되었었다,
묵상, 적용, 그래서 개인적인 위로와 은혜, 변화가 없는 설교는, 내 사역에는 어려서부터 없었다,
적어도 내 사전에는, 자기의 삶에 적용이나 경험이 없는 설교, 그것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전혀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고, 또 무엇을 나눠야할지 전혀 갈피가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럴때는, 다른 사람의 은혜되는 설교나, 개인적인 지식이나 과거의 은혜를 나눠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느낀 것은,
그런 식의 설교 행위는, 얼마나 고통이고 얼마나 공허했는지, 정말 잊혀지지 않는다,
매번 그랬고, 그래서 그런데서 빠져나오려고, 정말로 죽을 쒀도 좋으니, 내 설교만 해보려고 몸부림쳤었다,
지금도 내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설교,
그것은, 자기 적용, 자기 삶이 없는 설교, 다만 지식과 교훈 만을 나누는 설교,
그런 매너리즘 설교로 빠져드는 순간, 나는 그 날로 나의 모든 사역이 끝나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다 그러해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강요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니, 그것은 결코 그 누구라도 변명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진리가 있나니,
자기 설교를 자기 삶에서 보여줄 수 없는 설교는, 다 위선이요, 다 가증한 거짓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진리를 보여주신 분이지, 진리를 가르치신 분이 결단코 아니시다,
주님은 스스로 먼저 적용하시고, 먼저 그 본(本)이 되셨지, 다만 지식을 나누신 분이 결단코 아니시다,
자기 삶과 동떨어진 설교, 그 가증함과 위선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렇게 몸부림쳐 온 세월이었다,
복음을 설교하고 싶은가? 우리는 복음을 반드시 설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니,
자기가 복음을 살아내지 못하고서는, 그 누구라도 감히 복음을 설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자기가 복음이 아님을, 아니 오히려 복음마저 버렸음을, 그래서 복음에서 버리움 받은 자일 뿐임을,
우리는 차라리 그것을 설교해야만 한다, 차라리 그것이 자기도 살리고, 듣는 이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 생활과 언어, 그래서 자기 수고와 땀, 눈물과 피가 아닌 설교, 이젠 한국교회 강단에서 우리부터 걷어내자,